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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간호사는 있지만 간호법은 없는 나라 (이건정 이화여대 교수)

작성자 홍보
2021.06.21
조회 12013
[기고] 간호사는 있지만 간호법은 없는 나라

이건정 이화여대 교수


지난달 부산의 한 간호직 공무원이 과도한 업무에 지쳐 극단적 선택을 했다. 코로나19 발생 후 1년 반이 지나가고 있지만, 간호사의 초과 근무와 증가된 업무 강도는 개선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수도권에 코로나가 확산된 작년 10월부터 올 5월 중순까지 코로나에 감염된 간호사 수는 220명에 달한다. 하루에 한 명 넘는 간호사가 감염되었고, 백신 접종까지 맡으면서 피곤과 과로가 쌓여 급기야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국의 46만 간호사에게 코로나 감염의 위험과 과로보다 더 암담한 것은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환자의 안전을 지킬 간호법이 없다는 현실이다. 현행 의료법은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의료인 관련 법규들을 통합한 1944년의 조선의료령에 기초하고 있다. 당시는 간호부규칙, 의사규칙 등으로 분리되어 존재했다. 우리는 해방된 지 76년이 지나도록 ‘전쟁 동원용’으로 만든 식민지 시대의 이 법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쟁이 끝난 1948년 의료법은 그대로 두고, 의료인의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의사법, 치과의사법, 간호사법을 다시 따로 만들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90개가 넘는 나라도 간호사에 관한 별도의 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간호 업무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적극 반영한 결과다. 또 많은 선진국에서는 전문간호사, 임상간호학박사 등의 제도를 통해 간호사의 독립성 및 전문성을 강화해왔다.

현행 의료법은 급속히 변하는 보건의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법은 의료시설이나 의사 관련 조항에 집중되어 있다. 질병 예방 및 만성질환 관리, 노인요양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간호사의 업무와 역할을 제대로 담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한국 간호제도의 현실을 돌아보면 참담한 수준이다. 우선 법과 제도로 전문간호사의 자격과 교육과정을 정해놓았고 응급·종양·호스피스·마취 등 13개 분야에 걸쳐 석사과정을 마친 전문간호사를 배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병원 측의 무관심으로 실효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병원에서는 미국 등에서 별도의 대학 교육과정을 통해 양성되는 의사보조 인력인 PA(Physician Assistant) 업무를 간호사에게 떠넘기고 있다. 불법적으로 일부 의료행위를 담당하게 하는 등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유례없이 간호사보다 더 많은 수의 간호보조인력(간호조무사)을 양성했다. 현행 의료법은 이처럼 변화된 보건의료 환경을 적극적으로 담아내기는커녕 퇴행의 길을 걷고 있다. 간호법 제정이 시급한 이유다.

간호법 제정은 의사와 간호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라는 이익집단 간의 업무영역과 역할의 다툼을 위한 것이 아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 위험과 만성질환의 급증에서 살아야 하는, 그리고 얼마 후면 세계 1위의 노인 국가가 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간호사들이 미래가 없는 고된 현실을 죽음으로 호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초고령시대에 국민의 건강한 삶을 기약하기 위해서라도 여야 3당이 각각 발의한 간호법안이 전 국민의 합의 속에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


출처 : 경향신문